이승규

전망 좋은 방 2009. 1. 14. 23:33
[만물상] 의사 이승규
김홍진 논설위원 mailer@chosun.com
1992년 8월 서울아산병원 3층 수술실에서 20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친 외과 이승규 교수가 한강을 바라보며 "해냈다"고 외쳤다. 41세 간경변 환자의 간을 들어내고 뇌사자 간으로 갈아 끼우는 국내 세 번째 간이식 수술에 성공한 것이었다. 수술 전 1년 동안 주말마다 개(犬)의 간으로 연습을 했다. 독일에 가서 간암 세계 최고 권위자 브로엘시 박사로부터 수술기법도 배워왔다.

▶그는 9년 만에 스승을 뛰어넘었다. 2001년 브로엘시 박사가 '한 수 가르쳐달라'고 요청해왔다. 그가 세계 최초로 살아있는 두 사람의 간 일부를 떼어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2 대 1 수술에 성공한 것이다. 이달 초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세계간암학회엔 간암 권위자 300여명이 몰려왔다. 예년 참석자의 두 배였다. 간암수술 대가인 일본인 학회장은 "세계 최고라는 미국 엠디앤더슨 암센터보다 이 교수팀이 뛰어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다섯 살 때 결핵성 심낭염에 걸려 일본까지 건너가 수술을 받아 구사일생했다. 그가 이 병의 첫 수술 성공 사례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잠재의식에서부터 흰색 가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를 살린 것이 가슴수술이었기에 흉부외과가 끌렸지만 더 많은 스태프들이 회진(回診)에 따라다니는 게 멋있어서 일반외과를 택했다. 남들이 꺼리는 힘든 일을 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스승인 민병철 전 서울아산병원장 권유로 간이식 수술을 전공하게 됐다.

▶이 교수의 허벅지 굵기는 웬만한 처녀 허리만하다. 10시간 넘게 허리를 구부려 수술하려면 하체가 중요해 수술실 옆방에 러닝머신을 두고 틈만 나면 뛴다. 36시간 수술기록도 있다. 환자들에게 의사의 체력은 '생명줄'이다. 수술실에서 김밥·라면으로 때우고 새우잠 자기 일쑤다. 몇 년 전 어머니 장례 날 밤에도 긴급호출을 받고 수술실로 달려갔다.

▶이 교수팀은 올해 322건의 간이식 수술을 해 작년 320건에 이어 한 해 세계 최다 간이식 기록을 경신했다. 일요일 빼고 1년 내내 수술한 셈이다. 미국 ABC방송은 "드림팀"이라고 찬탄했다. 수술 성공률도 9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5%의 실패 중엔 다른 병원에서 "가망 없다"고 보낸 암환자들도 있지만 지식 부족이나 수술 잘못도 있었다고 그는 인정한다. "성공률 100%는 신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래도 그의 의사철학은 "실패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Posted by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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