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신문 , 2009.4.5)

“불편하죠, 사실은. 전 원래 막살던 사람인데. 중학교 때부터 담배 피우고 본드 하고(마시고), 그러고 살았거든요.”

로테르담, 도빌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고 돌아온 화제의 독립영화 <똥파리>의 주연과 연출을 겸한 양익준(34) 감독은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산수 시간에 분수를 몰라 나머지 공부를 했던 얘기, 시나리오 작성의 한 단계인 ‘트리트먼트’가 샴푸인 줄 알았다는 등의 농담 같은 진담을 술술 쏟아냈다. 영화제 참석차 외국에 나갔을 때 사용한 영어라곤 ‘아이 러브 유’와 ‘오케이’밖에 없다는 그는 <똥파리>의 영어 제목 ‘브레스리스’(숨가쁜, 숨이 찬)의 뜻도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알았다고 했다.

무슨 훈장처럼 ‘무식’을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머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똥파리> 시나리오도 “머리로 쓴 게 아니라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서 막 나왔”다고 했다.

그의 삶은 비주류 독립영화와 닮았다. 군대 가기 전 장난감 외판원과 막노동(서울 제기동 재건축 아파트를 자기가 지었다고 했다), 용산 전자상가 가전제품 운반원 등을 전전했다. 군 복무 시절 수능 시험을 봤고, 제대 뒤 “탤런트나 돼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공주영상대학에 들어갔다. 여러 편의 단편·장편 영화에 출연했고, 자신도 모르게 “나는 (내) 영화를 만들 거야”라고 수첩에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다 대만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허우샤오셴이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 했다는 말을 한 주간지에서 읽고 “화살촉이 머리를 뚫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생각하는 것은 물 위에 글을 쓰는 것이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돌 위에 새기는 것이다.”

그에게 인생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된 거장의 금언을 방에 붙여 놓고 쓰기 시작한 첫 시나리오가 중편으로 제작한 짝사랑에 관한 영화 <바라만 본다>(2005)였다. 그리고 단편 2편을 거쳐 <똥파리>의 시나리오를 썼다.


» 영화 <똥파리>
<똥파리>는 용역 깡패인 상훈(양익준)을 중심으로 가정 폭력이 어떻게 대물림되고, 또한 사회적 폭력으로 재생산되는지를 그렸다. 그의 몸이 겪어낸 삶처럼 거칠고, 장면마다 날선 에너지가 느껴지는 무서운 영화다. 이 영화가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것은, 기술적으로 깔끔하지만 열정이 없는 요즘 영화와 다르기 때문이다. 몇몇 평자들이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충격과 비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초록물고기>(감독 이창동)에 출연한 송강호를 진짜 조폭으로 착각한 사람이라면 <똥파리>의 양익준을 보고서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헐렁한 ‘기지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짝다리’를 짚은 채 욕설을 내뱉는 불량스런 자세는 영락없는 양아치다. 몇몇 언론이 <똥파리>를 자전적인 영화로 ‘잘못’ 소개했을 만큼 그의 연기는 실감난다. 그러나 그는 “내 경험이 일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자전적인 영화는 아니”라며 “주변에서 보아온 것들을 픽션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막살기는 했지만 깡패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내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본성 중에 폭력적인 본성이 분명히 있고, 그걸 끌어내서 연기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 난곡동의 반지하방(<똥파리>에서 김꽃비가 사는 집으로 나온다) 전세금 1700만원을 빼서 영화 제작에 보탠 그는 지금 경기도 능곡의 반지하방에 살고 있다. 양 감독은 “그러고 보니 난곡, 능곡, 곡 소리 나는 동네에만 사는 것 같다”며 “보일러가 너무 오래돼 겨우내 난방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외국 영화제에 갔을 때 제일 좋았던 게 “물만 틀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이었다”고도 했다. 인터뷰 자리에 입고 나온 옷은 스태프에게 빌린 것이었다. 양복 한벌 없는 그는 이 옷을 입고 세계 영화제들을 누볐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대해 “내 옷이 아닌 것 같다”며 “(영화 개봉만 끝나면) 지방으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계절 가는 것도 충분히 느끼고 살았는데 요즘은 내가 나인지도 잘 모를 만큼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영화는 “아이들과 관련된 어두운 내용의 영화가 될 것 같다”면서도 “평범한 놈이 너무 많은 것을 주워 담았기 때문에 일단 ‘버리는’ 작업부터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헤어진 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떠올랐다. 10대를 비행 청소년으로 보낸 뒤, 세계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감독의 반열에 오른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의 역사가 흥미로워지는 건 이렇게 난데없는 인물이 출현할 때다. 양익준 감독이 한국의 트뤼포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16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Posted by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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