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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의 나라 브라질, 파벨라를 아시나요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권성희, 임영준 기자 | 02/07 17:12 | 조회 970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는 삼바축제로 열기가 한창이다. 아름다운 해변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곳,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는 거대한 예수 그리스도상이 있는 곳, 정열과 춤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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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씽야 전경. 이보다 훨씬 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의 화려한 이면엔 누추함이 철철 흐르는 빈곤이 자리잡고 있다. 삼바, 해변, 예수 그리스도상. 이처럼 세계에 내세울만한 자랑거리 외에 리우데자네이루를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오명이 있으니 바로 남미 최대의 도시 빈민가가 있다는 점이다.

리우데자네이루를 포함해 브라질 대도시엔 어디나 빈민가가 있고 브라질의 빈민가는 특별히 파벨라라고 불린다. 특히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에서 파벨라가 가장 많고 규모도 가장 크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 호씽야는 남미 최대 규모의 빈민가로 관광상품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다.

브라질에 가기 전부터 그 유명한 파벨라는 꼭 방문해보고 싶었다. 원자재와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잘 나가고 있는 브라질 경제의 후면, 빈부격차가 세계 최대라는 브라질 경제의 속살을 보고 싶어서였다.

파벨라는 일반 관광회사나 가이드를 통해 갈 수 없다. 파벨라측과 특별한 친분을 맺고 있는, 허가를 받은 관광회사나 가이드를 통해서만 관광이 가능하다. 왜? 파벨라는 무법과 불법의 천지이기 때문이다. 파벨라는 브라질이란 법치국가 내의 치외법권 지역이다. 경찰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갔다간 경찰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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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끌어다 연결한 전선들

파벨라를 지배하는 건 갱단이다. 각 파벨라마다 지배하는 갱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의 허락을 얻은 사람만이 파벨라 관광이 가능하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몇 개의 파벨라가 관광상품으로 허용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개는 남미 최대의 파벨라인 호씽야로 관광을 간다.

묶고 있던 호텔(이름만 호텔이지 사실은 낡은 삼류 모텔 수준이었다)에 파벨라 관광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오후 2시에 관광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가격은 일인당 80헤알, 우리 돈으로 약 4만원 수준이다. 파벨라 관광은 오전과 오후 한번씩, 하루에 두번만 가능하다. 어둑해질 무렵엔 관광이 불가능하다. 총기류와 마약이 판치는 파벨라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후 2시 낡은 구형 봉고차가 호텔 앞으로 왔다. 우리 일행은 세 명. 차 안에는 허름한 옷차림의 브라질 사람 4명이 타고 있었다. 남자 운전사, 그 옆에 여자, 그리고 뒷좌석에 숱 적은 머리를 파마해 뒤로 넘겨 하나로 묶은 땅딸막한 남자, 키 크고 호리호리한 젊은 남자였다. 4명 모두 '이 사람들이 파벨라 출신인가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남루한 차림새였다. 4명은 모두 '우르카 투어리즘'이란 관광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왜 4명이나 필요한지 알 수 없었지만 봉고차를 탔다. 일행은 우리 셋뿐이었다. 차는 의자 시트가 중간중간 뜯어져 스폰지가 나올 정도로 낡았고 더러웠다. 게다가 이상한 쾌쾌한 냄새가 나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말을 하다 입 속으로 무슨 냄새 나는 이물질 같은 것이 목구멍 안으로 넘어간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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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따라 집 위에 집을 아무렇게나 올린다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니 리우데자네이루는 한여름. 더운데 낡은 봉고차의 에어컨은 말을 듣지 않았고 공기는 텁텁하고 냄새가 났다. 이대로 어디 납치라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관광회사 차가 이렇게 더럽고 낡을 리가 없어. 게다가 우리 셋밖에 없는데 왜 관광회사서 4명이나 따라 나온 거야?' 이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불안했다.

조금 가다 키 크고 호리호리한 남자가 다른 일이 있다며 내렸다. 머리를 뒤로 넘겨 하나로 묶은 땅딸막한 남자가 대장인 듯 싶었다. 그는 자신을 세르지오 펠릭스라고 소개했다. 다행히 그는 친절했고 파벨라 관광 전문가답게 아는 것도 많았고 영어도 훌륭했다.(발음이 또박또박하고 단어가 쉬워서 알아들을만 했다는 뜻이다.)

우선 굉장히 낭만적으로 들리는 파벨라란 단어의 뜻부터 물어봤다. 그는 "노란 꽃"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리우데자네리우엔 나무와 꽃이 많아서 빈민가에 파벨라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가 있다. 또 파벨라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활짝 핀 꽃 봉오리 같다고 해서 파벨라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파벨라는 산등성이, 특히 부자 동네 바로 옆 산등성이에 형성된다. 산을 타고 작은 집들이 불규칙하게 다닥다닥 붙어 있어 밤에 보면 산에 노란 불빛이 켜진 모습이 실제 노란 꽃처럼 아름답다. 그 곳의 실제 삶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펠릭스는 파벨라란 이름에 얽힌 전설도 얘기해줬다. "이 얘기가 진짜인지는 모른다. 그냥 전해져오는 얘기다. 옛날에 파벨라란 이름의 여자 아이가 도시 한 구석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추운 날 얼어 죽었다. 소녀의 죽음에 사람들이 슬퍼하며 이제 우리를 파벨라라고 부르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때부터 빈민가를 파벨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에 파벨라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중반부터다. 아마존강 유역, 브라질 내륙 밀림 등에서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나와 청소, 쓰레기 처리 등의 잡일을 하면서 정착한 곳이 산등성이고 이게 커지면서 현재의 파벨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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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의 중요한 대중교통인 오토바이

펠릭스에 따르면 리우데자네이루에만 600개의 파벨라에 70만명이 살고 있다. 이 중 호씽야에만 21만5000명이 살고 있으니 규모로 단연 최고다. 호씽야에도 이야기가 있다. 파벨라에 처음으로 정착했던 남자가 집 옆에 텃밭을 가꿨는데 이런 텃밭을 포르투갈어로 '호싸'라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작은 것, 또는 친근감을 더하기 위해 '~잉야'라는 축소사를 잘 붙이는데 '호싸'가 작아서 '호씽야'라고 부르게 됐으며 이 마을 이름이 호씽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유명한 축구선수 호나우디유를 호나우딩유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드디어 호씽야가 눈 앞에 나타났다. 경사가 급한 산등성이에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 넓게 퍼져 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봉고를 타고 호씽야 중심인 산 중턱까지는 올라가야 하는데 길이 좁고 올라가는 버스는 많아서 많이 막혔다. 차 안에서 보니 주위로 젊은 남자들이 운전하는 오토바이들이 쉴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펠릭스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여기의 교통수단"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호씽야는 산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도심에서 오가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버스가 오가는 간격이 길다. 이 때문에 이 곳 남자들은 돈만 좀 모였다 싶으면 오토바이를 사서 내려가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을 태워주고 돈을 받는다. 1Km당 가격은 1헤알. 오토바이 뒷좌석에 엄마와 어린 아이 둘까지 헬멧도 쓰지 않고 달리는 모습도 보였다.

길 한쪽에선 벽돌 같은 것이 쌓여 있었다. 펠릭스는 "여기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벽돌 몇 개 사서 담을 올리고, 그렇게 살다가 또 돈이 생기면 담을 더 올리는 식으로 그렇게 집을 짓는다"며 "그래서 여기 집들은 일단 1층으로 지었다가 얼마 뒤 2층으로 올리고, 그 위에 또 짓고 이렇게 계속 높이 올린다"고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3~4층짜리 높이의 다가구주택 같은 것이 많이 보이는데 한 건물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1층과 2층, 2층과 3층의 건축자재와 재질, 색깔이 다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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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가파른 파벨라 골목

어느 파벨라나 지상에 가까울수록 집값이 비싸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산다. 높이 올라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다. 올라갈수록 길은 더 좁아지고 집은 점점 더 허술해졌다. 펠릭스 말로는 저 위로 올라가면 나무집은 물론이고 심지어 돈이 없어 두꺼운 종이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봉고를 타고 어느 정도 오르자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좁고 삐뚤삐뚤한 골목들이 여기저기로 아무렇게나 나 있었다. 땅이 있으면 그냥 집을 지으니 골목이 좁고 불규칙할 수밖에 없다. 차에서 내리니 차 안이 천국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한 냄새 때문이었다.

파벨라에선 전기도, 수도도 훔쳐서 쓴다. 전선을 어떻게 빼돌려 연결해 쓰고 수도도 중간에 빼돌려 쓴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좁은 골목의 하늘은 여기저기서 끌어와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전선이 워낙 복잡하니 여기선 전기가 고장 나도 어느 전선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 그냥 다시 전기를 훔쳐 새 전선을 연결한다고 한다.

수도도 그냥 끌어쓰는 것이니 하수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을리 없다. 그러니 무엇인가 썩는 듯한 냄새, 텁텁한 공기는 하수도 냄새인 듯 싶었다. 얼마나 지독한지 입을 열기가 어려웠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왔다.

펠릭스에게 진작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봤다. 즉, 여기 관광을 하면 받은 수입의 얼마를 이 곳 갱단에 주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펠릭스는 "돈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관광객이 이 곳에 와서 파벨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먹을 거라든지, 작은 수공예품 같은 것을 사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사는 것조차 관광객의 자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펠릭스의 말을 100% 믿을 순 없었다. 그래도 뭔가 사먹어 주고 싶었지만 이 곳에서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은 '미션 임파시블'이었다. 좁은 골목길 입구에 생선가게, 닭꼬치가게, 딱 보기에도 불량식품처럼 보이는 울긋불긋한 젤리 같은 과자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일행 중 하나가 닭꼬치라도 하나씩 사 먹자고 했지만 그 지독한 냄새와 골목길 여기저기에 고여 있는 더러운 물웅덩이, 곳곳에 싸여 있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닭꼬치를 먹는다면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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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아무렇게나 올려 어두운 파벨라 골목

결국 닭꼬치를 먹지 않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옛날 시골 이발소 같은 곳도 보이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었다. 집 창가를 화분으로 장식해 꾸며놓은 집도 있었다. 가다 보니 벽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강렬하게 해놓은 그라피티 같은 것이 종종 보였다. 대개는 부두교 관련 그림이었다. 한 벽에는 스프레이로 무엇인가를 써놓은 글이 있었다. 펠릭스는 그걸 보더니 호씽야를 지배하는 갱단이 써놓은 글이라고 했다.

호씽야를 지배하는 갱단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가장 규모가 큰 A.D.A.다. 아미고 도스 아미고스(Amigo dos Amigos)의 약자로 '친구 중의 친구'란 뜻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엔 A.D.A를 포함해 3대 갱단이 있는데 두번째가 레드 커맨더(붉은 지휘관), 세번째가 쓰리 커맨더스(세명의 지휘관들)다.

이 중 레드 커맨더는 브라질 군사독재 시절인 1964년에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위해 만들었던 조직이다. 하지만 군사독재 타파란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다보니 무기를 탈취하고 은행을 털고 마약까지 손을 대면서 갱단으로 변질됐다고 한다.

갱단이 지배하는 파벨라에선 지켜야할 법이 있다. '헤이 도 실렌시오(Rei do Silencio)' 영어로 하자면 '로 오브 사일런스(Law of Silence)'다. 즉, '침묵의 법'이다. 워낙 불법이 많으니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

갱단은 파벨라 사람들을 법으로부터, 저 밑의 다른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갱단의 규율만 잘 지키면 이 곳 생활은 그럭저럭 살만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경찰은 나쁜 놈, A.D.A는 영웅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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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씽야를 지배하는 갱단 A.D.A의 낙서

호씽야에서 충격 받았던 것은 웃옷을 벗어던진 맨 어깨에 기관총인지 장총을 메고 다니는 열대여섯 살 난 남자 아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총을 메고 다녔고 그 아이를 지나는 파벨라 사람들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우린 설사 눈길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총을 멘 아이들이 나타나면 재빨리 고개를 돌리면서 한편으론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없을까 고민했다.

이 곳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지 않는다. 저 밑까지 내려가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학교를 오가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갱단에 들어가 마약을 매매하거나 오토바이 배달을 하거나 공부를 그만두고 파벨라의 삶에 적응한다.

호씽야 사람들의 평균 월급은 350~380헤알. 우리 돈으로 2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런데 마약 거래를 하면 주급이 350~380헤알로 뛴다. 월급이 4배 이상 늘어나니 어린 아이들에게도 마약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파벨라 관광은 1991년에 영국인 남성이 그 유명하다는 파벨라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됐다고 한다. 현재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 관광상품이 되어 5개 관광회사를 통해 하루에 90명 정도, 1년에 3만6000명 정도가 호씽야를 방문한다. 펠릭스의 회사는 이 5개 관광회사 중에서도 가장 작은 것 같았다.

파벨라 골목을 다 돌아다니고 다시 봉고를 타고 돌아가는 길. 펠릭스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줬다. 파벨라 사람들은 파벨라를 떠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곳을 왜 떠나기 싫겠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파벨라에선 전기도, 수도도 공짜니 생활비가 덜 든다. 파벨라 밖에 나가면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드니 차라리 파벨라에서 갱단의 보호를 받으며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이다.


다음날 다른 관광 가이드를 만나 전날 파벨라 관광을 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는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브라질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했고 영국에서도 오래 산 말하자면 인텔리 계층이다. 그는 "어느 나라에나 다 빈민가는 있다. 미국에도, 영국에도 있다. 그런데 유독 왜 브라질만 치부인 빈민가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어제 펠릭스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을 그에게 물어봤다. 파벨라를 지배하는 두목은 어디 사느냐는 것이다. 분명 마약과 불법거래로 돈을 많이 벌었을텐데 지저분한 파벨라에서 살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파벨라에서 산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들어올 수 없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라며 "물론 파벨라에서 굉장히 큰 집에 살텐데 거긴 골목이 복잡하고 워낙 넓은데다 보통 사람은 들어가지 못해 나도 집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갱단 두목은 파벨라에 살지만 리우데자네이루의 부촌에도 집을 몇 채씩 갖고 있다"며 "성형수술을 해서 경찰이 못 알아보게 만들어 가끔 내려온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한국인 주재원 하나는 "브라질에서 남자든, 여자든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라며 "남자는 축구를 하는 것, 여자는 모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호나우두나 히바우두 모두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 출신이다. 브라질 출신의 유명 축구선수 중 빈민가 출신이 아닌 중산층 출신은 카카 정도가 유일하다. 그러니 빈민가 아이들이 어디서나 축구공을 발에서 떼어놓질 않는 이유는 이해할만하다. 여자 아이들은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모델, 지젤 번천을 꿈꾼다. 그것만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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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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