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978135
[배명복시시각각] 브라질을 다시 본다 [중앙일보]

리우데자네이루의 12월은 한여름의 시작이다. 어제 한낮 기온은 섭씨 37도까지 올라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고 브라질 사람들이 자랑하는 코파카바나에선 비치 파라솔들의 열병식(閱兵式)이 한창이다. 코르코바두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38m의 거대한 예수상(像)이 리우의 해변을 찾은 수많은 사람의 행운을 비는 듯하다.

리우는 두 얼굴의 도시다. 고급 호텔과 맨션이 즐비한 해변의 부촌(富村) 뒤로는 완전히 딴 세상이 펼쳐진다. 산등성이마다 성냥갑 같은 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파벨라’라고 하는 산동네 빈민촌이다. 경찰 당국에 따르면 리우에만 750개의 크고 작은 파벨라가 있고, 이 중 300여 곳에서 마약 밀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범죄 조직들이 장악하고 있는 파벨라에서는 경찰과 조직원 간의 총격전이 수시로 벌어진다. 올 들어 하루 평균 3.5명이 ‘범죄와의 전쟁’ 중 사살됐다. 경찰력만으로 부족해 브라질 정부는 1000여 명의 연방군까지 투입했다. 내전(內戰)이 따로 없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만의 얘기다. 일반인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생계형 범죄의 위협이다. 리우에 오면 “혼자 다니지 말고, 걸리면 있는 대로 다 주라”는 경고를 수시로 듣는다. 총을 들이대고 지갑을 터는 것은 주로 10대 후반 청소년들이다. 마약을 복용하고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치안 불안은 빈부격차의 이면이다. 브라질은 남미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다. 1억8000만 인구의 약 17%인 3000만 명이 절대빈곤층이다. 반면 상위 10%에 해당하는 1800만 명은 수시로 해외여행을 즐기고, 명품만 찾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소득층이다. 민간 소유 헬기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브라질이다. 빈곤·범죄·부패는 뗄 수 없는 ‘마(魔)의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브라질 경제는 보기 드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1조673억 달러로, 처음 1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한국과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5700달러)은 4년 새 배로 늘었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이루어진 외국인 투자만 313억 달러다. 대형 해저 유전의 발견으로 원유 매장량이 세계 13위로 뛰어오르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입도 추진 중이다. 브라질 정부는 성장의 혜택이 밑으로 스며들면 빈부격차 문제도 차츰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반도의 37배, 남미 전체 면적의 47%를 차지하는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은 브라질이 가진 잠재력의 원천이다. 중국과 인도가 전 세계 원자재 시장의 블랙홀로 떠오르면서 브라질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10일부터 이틀간 리우에서는 제3차 한국·브라질 포럼이 열렸다. 정부와 민간을 대표하는 참석자들은 양국 간 실질 협력 증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브라질 측은 바이오 연료인 에탄올 수출과 제3국 공동진출 및 첨단기술 이전에 관심을 보였고, 한국 측은 리우~상파울루 간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미 양국 간 교역 규모는 연간 6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삼성과 LG·포스코처럼 현지 투자를 통해 직접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있거나 중개영업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만 40여 개에 달한다. 이들이 고용한 인력도 1만 명이 넘는다. 브라질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은 5만 명에 달한다.

고용 창출이나 기술 이전에는 관심이 없고, 자원 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에 대해 브라질은 내심 불만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일자리 창출과 기술 이전에 적극적인 한국에 대해 브라질은 호감을 갖고 있다. 내년 4월이면 한국 국적기의 브라질 직항이 재개된다. 또 2009년은 한·브라질 수교 50주년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브라질을 다시 보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의 지혜’를 찾아야 할 때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2007.12.12 20:35 입력 / 2007.12.13 07:08 수정
Posted by 동그라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