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민족론 비판 독특 … 視野 틔워주지만 ‘주장’ 와 닿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2』이삼성 지음│한길사│2009
2009년 06월 08일 (월) 14:21:30 강진아 서평위원/ 경북대·사학 editor@kyosu.net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미국과의 동맹이 전략적 선택이 아닌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돼버린 결과, 국가전략을 둘러싼 객관적 논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수천 년을 이웃해 온 주변 국가와 민족은 타자화시켜 버렸다고 비판한다. 이는 19세기 이전까지 한반도의 국가들이 중화질서를 이데올로기로 내재화하면서, 주변 국가와 민족을 타자화하고 국제정세에서 현실주의적 전략적 사고를 못하게 한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기억마저 왜곡돼버렸다.


1권 제1장에서 3장까지는 이론적 접근이 위주가 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한국사회의 민족론 비판이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학술계에서 민족이 터부시 되는 원인을 분석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의 대표자로서 민족을 원초적 야만으로 비판해 온 이영훈 교수를 반비판해 민족 상징성 연구를 근거로 민족 부정 역시 인간의 초역사성을 가정하는 허구적 관념임을 지적했다. 3장에서는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중화적 질서를 지배와 종속의 질서가 아닌 ‘형식적 위계와 비공식적 자율성의 질서’로 규정했다. 사실 대등한 국가 간 질서라는 서구의 주권적 질서도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하나의 규범에 불과했을 뿐 현실에는 힘의 논리가 지배했다. 반면 중화적 질서는 힘의 불균형을 현실로 인정한 후의 비대칭적 안보레짐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국가들은 중화질서에 대한 이념적 헌신을 체질화함으로써, 지정학적 현실주의의 전략적 인식과 대응을 가로막게 했다. 제4장부터 제7장까지는 전반부의 이론적 문제의식을 고대부터 18세기까지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함께 겪은 국제적 지각 변동을 사례로 통사 형식을 곁들여 검증하고 있다. 4장은 고대사의 쟁점인 단군고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에 대한 각 국 학계 입장을 정리 비판해 고대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제대로 평가해야한다고 주장했고, 고구려 및 발해 등 한반도 역사에서 내륙아시아 정체성은 신라 통일로 퇴장했다고 밝혔다.

제5장 고려시대의 국제관계에서는 거란 및 몽고와의 전쟁에서 이미 중화주의에 입각한 주변 민족에 대한 타자적 시선과 무시가 나타났고, 그러한 태도가 전쟁을 도발한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나 한국사 연구에서 전쟁 발생 원인과 회피 가능성에 대해서는 연구가 드물고 오로지 항쟁 과정과 전쟁 결과에만 연구가 집중하는 현상, 또 한반도 국가의 외교에 드러나는 무모하거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 대단히 관대한 경향을 비판했다. 30년 항몽 항쟁의 허구성을 냉정히 분석하고, 이후 몽고 부마국으로서 고려는 국가와 비국가의 회색지대였다고 평가했다. 6장과 7장은 임란과 호란의 분석인데, 고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중화주의적 대외의식과 행동 패턴이 전쟁을 유발한 중요 변수였다.

저자는 외부 위협에 대한 전략적 무관심과 무방비성을 꼬집는다. 그 중에 한국사에서 조명되지 못한 전쟁송환자에 대한 조선정부와 사회의 가혹 행위나, 효종의 북벌론이 만주에 대한 영토적 환상과 만주에 사는 제 민족들에 대한 중화주의적 타자화의 소산이었다는 지적은 곱씹을만하다. 2권의 제1장과 제2장은 19세기 서양 근대문명을 산업혁명, 정치혁명, 식민주의로 파악하고 최근 동서양 비교사의 성과를 흡수해 중국 및 동아시아의 근대 전환 가능성과 한계를 타진한다. 제3장~7장은 1840~1945년까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다수 제국주의 국가들의 연합 질서라는 ‘제국주의 카르텔’ 개념을 도입해 7개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대를 서술했다.

제8장~12장은 앞에서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질서가 등장하는 1840년부터 한일병합의 1910년까지를 말기 조선이라고 명명하고 조선 내정과 국제관계에서의 차이를 근거로 9개  시기로 시대를 구분했다.


독후 감상으로 1권은 역사학자들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리얼리즘이 돋보였던데 비해, 오히려 저자의 주 전공에 가까운 2권은 감동이 덜했다. 왜 그럴까. 1권에는 한국사 서술에 탈각돼 있었던 내재화된 중화주의에 대한 현실주의적 입장에서의 비판과 냉정한 국제정치적 분석이, 저자의 지적대로 ‘기억의 정치’에 몰입돼 있었던 독자들을 일깨운 측면이 적지 않았다. 반면 2권은 일본, 미국의 제국주의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에 대해서 대단히 관대한 서술을 하고 있다.


2권의 서술양식은 한국의 비판적 지성인에게 흔히 있는 레토릭일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좌파지식인들의 입장과도 공명한다. 1권의 시대에서 동아시아의 패권적 중심은 중국이었지만, 2권은 미국과 일본이 패권주자가 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중국은 지식인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미국 내 보수주의적 학자의 좌파에 대한 비판처럼, “미국이 싫어서 중국”을 곱게 보아서는 곤란하다. 저자의 지적대로 중화주의의 내재화와 마찬가지로, 패권비판을 이데올로기화한다면 마찬가지로 전략적 사고가 불가능하다.


1권과 2권을 통틀어 중화제국은 유목제국이나 미국에 비해 한반도에서 전쟁 유발요인이기보다는 평화 지속요인이었던 것처럼 비춰진다. 사실 1권의 시대는 중화제국 질서 즉 중국의 중심성을 인정하고 들어간 시대였으므로 이를 부정하는 새로운 세력이 나타날 때 한반도가 전화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 2권의 시대(19세기) 그리고 앞으로 나올 3권의 시대 20세기와 21세기 동아시아는, 실질적으로는 대단한 국력의 차이가 존재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주권국가의 틀을 유지해야만 하는 시대로 질적으로 1권과 다르다. 따라서 중국이란 행위자의 성격 역시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1권에서 중국위협론에 대한 반박으로, 지정학적 분석에 근거해 과거 역사에서 중국의 평화유지적 역할을 들었던 것은 중국위협론이 등장하는 오늘날의 상황과 과거 상황의 차이를 고려할 때 정합적인 비판만은 아니다.


19세기 중국의 주변화 과정에서 중국은 본질적으로 조공질서에 입각한 문명제국에서 국민국가로 탈바꿈했고, 롤모델은 일본이었다. 전체적으로 서구 저작에 의존도가 높고 대체로 연구 시각도 수용적이다. 예를 들어 유목민족사 연구에서는 바필드나 그루세, 중국에 대해서는 페어뱅크, 조선에 대해서는 팔레가 그러하다. 그래선지 쟁점별로 시야를 확 트여주는 계발이 있는가하면, 1권과 2권을 통관하는 저자의 주장은 아직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강진아 서평위원/ 경북대·사학

필자는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명제국에서 국민국가로』등의 저서와 「동아시아로 다시 쓴 세계사」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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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할만한 점 : 첫째,  "민족의식"에 대한 공격, 혹은 탈민족에 대한 지향은 실은, 탈역사화를 주장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  둘째,  이른바 고구려 담론, 만주 담론은 소중화주의(사대주의)와 그 지역 민족들에 대한 타자화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점.

Posted by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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