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성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자유스러운 나라여서 여성이 혼전 성경험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여성에 대한 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여성 차별로 지탄을 받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프랑스 안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이슬람 신자들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한 남자가 결혼 한 후 신부가 혼전에 성 경험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결혼을 무효화하려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법원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이 프랑스인이라면 법원이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외국인이고 이슬람 신자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들의 문화적 특성을 참작하여 판결하려니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법원은 결혼을 무효라고 선언하는 판결을 내렸다.  프랑스 북부 두에 법원은 2006년에 결혼한 한 이슬람 남성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재판 끝에 지난 4월, 남성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결혼 무효를 선언했다.  법원은 당시 결혼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필수적인 자격'을 속였다면 상대방이 무효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여론이 끓기 시작했다.  결국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이 항소재판을 열도록 지시했다.  이에 앞서 여성단체들과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은 두에법원의 판결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승리인 동시에 여성해방에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하고, 유럽의회의 의원들 가운데 150명 가량이 다티 법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있을 수 없는 인권침해라고 비난 하기도 했었다.  결국 지난 22일 다시 열린 항소재판에서 검찰은 여성의 순결은 결혼의 필수요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기존 판결의 번복을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순결상실 같은 동기가 아니라 ‘잘못 이해된 정체성’ 등과 같은 일반적 용어를 사용한다면 결혼 무효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붙였다. 

한편 당사자인 부부는 모두 이날의 심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쌍방 모두 결혼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서면으로 법원에 제출했다.  신부 측은 이번 시비로 심신이 크게 허약해진데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결혼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결혼 자체를 무효화할 경우 또 다른 인권시비로 쌍방의 고통이 길어지고, 법원도 난처해 질 것이므로, 결혼 자체는 인정하고, 법원과 쌍방 당사자들이 협조하여 빠른 시간 내에 이혼절차를 밟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인터넷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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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례신문 2008-7-14  (연합통신)

순결을 속이고 한 결혼은 무효라는 프랑스 법원의 판결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이슬람 여성들 사이에서 처녀막 복원 수술이 확산되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이 13일 보도했다.

타임은 프랑스 북부 릴 지방법원의 판결이 나중에 법무부의 항소로 번복돼 혼전에 처녀막을 잃은 신부들이 분노한 남편들에 의해 사기 혐의로 법정에 끌려가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순결에 대한 문화적 압박은 많은 여성들을 병원으로 향하게 할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다고 전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처녀막 복원 수술을 받는 여성의 숫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의사들은 처녀막 복원 수술이 갈수록 일반화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혼전 성교나 격렬한 운동 과정에서 처녀막이 파손된 여성들이 결혼 과정에서 남편이나 가족들로부터 받을 가능성이 있는 수모나 이혼요구, 심지어 폭력을 미리 막기 위한 것이지만 숫처녀이든 복원 수술을 받은 여성이든 처녀막이 파열될 때 순결의 징표인 출혈이 발생하지 않는 여성도 30-40%나 된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처녀막 복원 수술의 성행이 전통에 뿌리를 둔 공동체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의지를 반영하는 동시에 처녀성의 소유로 상징되는 남성들의 계속된 억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프랑스 직장내의 이슬람 문제를 다룬 '알라, 사장님, 그리고 나'라는 책을 쓴 두니어 부자는 "프랑스 이슬람 여성들은 성적인 것을 포함해 갈수록 남성들이 강제하려는 통제와 압력에 맞서 현대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지만 구습에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느끼는 단 한번은 이슬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법원도 인정하지 않는, 순전히 마초적(남성우월주의적) 전통인 혼인시의 처녀성 요구"라고 평가했다.

인종적으로 다양한 주민이 살고 있는 프랑스 외곽 로베르 발랑제 병원의 스테판 생 레제 소아여성과장은 젊은 층에서는 이슬람과 비이슬람 여성간의 사회적, 성적 차이가 줄어들고 있고 늦게 결혼하려는 경향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생 레제 과장은 그러나 이같은 만혼 경향 때문에 결혼 때까지 처녀성을 유지할 가능성은 작아진다면서 처녀성을 잃은 여성들이 결혼을 앞두고 겪는 압박이 그들의 심리적, 신체적 행복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도 때로는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처녀막 복원 수술에 동의하기도 한다고 실토했다.

그는 또 "이것은 전통적인 사람들의 부당한 압력 때문에 불필요한 의료행위에 몸을 맡기는 젊은 이슬람 여성들을 상징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부당한 압력 때문에 가슴, 코, 입술, 심지어 얼굴 전체를 뜯어 고치기 위해 불필요한 의료행위에 몸을 맡기는 여성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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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정원 설문조사…“집단따돌림 등 2차피해 나타나”

청소년 10명 중 2명이 휴대전화로 음란물을 직접 제작하거나 타인에게 전송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은경ㆍ이창훈 연구원이 작년 11월2일부터 2주간 전국 중ㆍ고등학생 1천612명을 설문조사해 작성한 ’청소년의 휴대폰을 이용한 음란물 유통 실태 및 원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23명(20%)이 휴대전화로 ’섹스팅(Sexting)’을 해봤다고 응답했다.

’섹스팅’은 ’섹스(Sex)’와 ’텍스팅(texting)’의 합성어로, 청소년이 휴대전화로 성적인 내용의 문자ㆍ음성메시지를 보내거나 야한 동영상이나 사진을 제작ㆍ유통하는 행위를 말한다.

섹스팅 활동 경험이 있는 학생 중에는 자신이나 친구의 특정 신체부위 노출 사진이나 속옷 사진을 찍어봤다는 답이 21.9%로 가장 많았고, 야한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보낸 경험이 있다는 답은 5.2%였다.

자신 또는 친구의 자위나 성행위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봤다는 학생(2.8%)도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신의 노출 사진이나 동영상이 다른 학생들 사이에 유포된 뒤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왕따’를 당했다는 학생도 있는 등 섹스팅이 2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섹스팅을 즐기는 이유로 35%는 ’재미나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답했으나,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라는 응답도 17.6%나 됐다.

또 ’나를 보여주거나 표현하는 방법이니까(11%)’, ’인터넷에서 유명해지니까(7.1%)’, ’이성친구를 사귈 수 있어서(4.8%)’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섹스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복수응답 허용)에는 ’역겨워 보인다(60%)’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41%)’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으나, ’별문제 없다(24.1%)’, ’용감하다(13.3%)’ 등 대답도 있었다.

보고서는 섹스팅을 경험한 청소년 비율이 미국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한 시민단체가 2008년 진행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는 미국 청소년의 59%가 섹스팅을 경험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보고서는 “미국에서는 이미 피해 청소년이 따돌림과 괴롭힘 등을 참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사례가 나오는 등 사회문제로 됐다”며 “섹스팅은 일종의 ’아동포르노’라는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함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선일보  2010.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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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보성 연쇄살인 漁夫와 그 가족 만나 보니

헌법재판소가 1996년 11월 합헌 결정했던 사형제에 대해 25일, 재판관 9명 중 5명의 의견으로 다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사형수 오모(72)씨가 낸 위헌심판 사건에서 "사형제는 헌법(110조 4항)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이라며 "생명권 제한에 있어서 헌법의 한계를 일탈했다 할 수 없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본지 2월 26일 보도

보성 앞바다에 썰물이 빠져나갔다. 어선들이 갯벌에 몸을 묻고 있었다. 오씨는 더이상 마을에서 회자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오씨가 요즘 어디 있느냐”고 물어왔다. / 한경진 기자
오씨는 2007년 8월 말 전남 보성 우암마을 앞바다에서 20대 남녀를 1t어선에 태워 한적한 바다로 갔다. 오씨는 김모(남·21)씨를 바다에 밀어 갈고리가 달린 2m짜리 '삿갓대'로 찍어 살해했고, 추모(여·20)씨를 추행하려다 여의치 않자 역시 바다에 빠뜨려 숨지게 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오씨는 같은 장소로 여행 온 20대 여성 안모(23)씨와 조모(24)씨를 배에 태웠다. 노인은 이들을 추행하려다 몸싸움 끝에 바다에 빠뜨려 목숨을 빼앗았다. 2008년 2월 광주지방법원은 오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해 8월 노인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그 결과가 올 2월 나온 것이다. 사형제는 '합헌'이라는 결론이다. 오씨는 이 어촌에서 2남5녀를 키웠다. 자식들이 출가하자 오씨는 부인과 읍내로 이사했고, 주꾸미를 잡으려 며칠씩 홀로 우암마을에서 머물곤 했다.

잊혀져 가는 살인의 추억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랑께!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니까, 뭔 상관인데 여길 찾아왔어! 뭘 물어보고 싶은겨! 큰아들? 큰아들도 사건 나고 그 해에 바로 죽어버렸어! 나는 인자 그쪽하고는 연을 끊은 사람이여."

1일 오후 3시 가랑비 내리던 마을에서 오모(여·47)씨가 외쳤다. 오씨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찾아온 기자에게 억센 사투리로 소리쳤다. 그는 새로 지은 양옥집 철문을 쾅 닫아 걸어 잠그고 거실 커튼을 쳤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그는 1시간쯤 지나 집 밖으로 나와 "아버지고 뭐고, 그런 짓을 한 사람과 나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인자 잊고 지냈는디! 빨리 돌아가버리세요." 조용한 마을에 카랑한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덤덤하게 말했다. 최모(여·69)씨는 "오씨도 잡혔고 잊혀진 사건"이라고 했다. "지 각시는 싫다는데 오씨가 더 매달렸지. 남자가 각시질 잘하는 것만 빼면 괜찮았어. 사건 났을 땐 웅성웅성했는데 지금은 조용혀."

마을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오씨의 사촌동생(67)은 "그렇게 독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큰아들은 사건 있고 나서 충격으로 자살했고 오씨의 처는 읍내를 떠나 서울에서 곱창집을 하는 딸네 집으로 갔다"고 했다.

"아들은… 그해 아버지 면회 간다고 해놓고 면회 못하고 죽어버렸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여길 두고 '죽음의 바다'라고 했는데 이젠 안 그려." 오씨의 이복형(88)은 "그나저나 지금 동생이 어디 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포구 횟집에서 일하는 이모(여·48)씨는 "아주 가끔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바다를 가리키면서 '그 어부가 어디서 죽였느냐'고 묻지만 '이제 그냥 안 좋은 기억은 잊으라'고 말한다"고 했다.

"처음엔 '화성연쇄살인'처럼 마을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걱정을 했어요. 이제 전어축제를 해도 사람들이 100m 넘게 줄 서는 일은 없지만 경기가 안 좋아서 그렇지, 사건 때문은 아닌 거 같아요. 잊혀졌지요."

광주교도소…칭호번호 7××번

오씨는 2007년 10월 순천교도소에 들어왔다. 다음해 2월 사형 선고를 받고 광주교도소로 이감됐다. 2일 오후 12시10분 광주교도소 미결 2호 접견실. 키가 165㎝ 정도 되는 노인이 누런 수형복을 입고 들어섰다. 오씨는 짧게 깎은 머리와 이마에 진 굵은 주름 때문인지 초췌해 보였다. 충혈된 눈에 눈물이 차오른 노인은 겁먹은 듯 말할 때마다 두 손을 포개 만지작거렸다. "사형제 합헌 결정이 난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다. 오씨는 "합헌이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앞으로 사형을 받을 수도 있는 거다"라고 설명하자 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배 태운 죄로 죽어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귀가 어두운 노인은 목청을 높이며 기자에게 "억울하다"고 거듭 말했다. "나가 사실 배 태워 달라고 해서 배 태우고, 빠진 사람 신고 안 한 죄밖에 없제. 나 보고 거짓말한다고 보성서에사 조사받으러 온 사람 너이서(넷이서) 온 데를 때려서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어요. 쓰레빠로 팔목도 때리고, 발길질로 오른쪽 팔이랑 등골을 때려서 정신이 없었어요. 나는 글도 모르제, 무조건 '네''네'하고 지장 찍었어요."

남녀 넷을 살해한 70대 어부가 울먹였다. 마을 사람, 가족 모두 그가 어디 수감돼 있는지 알지 못했다. 버려진 노인은 "밥은 교도소에서 주는 대로 먹고산다"고 했다. "큰아들의 소식 들으셨느냐"고 하자 그는 "큰아들이 왜요?"라고 했다. "피해자 가족들한테 가진 것이 없어 보상을 못해줘서 마음속으로만 반성하고 있어요. 근데 희롱한 것은 없어요. 주꾸미를 몇 마리 잡아서 날것을 좋아한다길래, 고추장이랑 꺼내서 줬어요. 삿갓대로 뭣 하려고 죽였겠어요. 아가씨 조심하라고 하는데 머시매가 잡으려다 같이 빠졌어요. 나는 잡으려고 했는데 항해하는 도중이라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오씨의 판결문에는 사고 당일 피해자 추씨가 오후 6시26분부터 5분 동안 4번에 걸쳐 119 통화를 시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추씨가 119에 네 번째 통화를 했을 때 "어따……하냐"라고 말하는 오씨의 음성이 녹음돼 있다.

처음 사건에서 여자친구에 앞서 먼저 익사한 것으로 알려진 남자 친구 김씨의 시신은 양쪽 발목·정강이·왼쪽 어깨·팔이 부러지고 심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2차 범행일 당시 피해자 안씨는 오후 3시36분쯤 이전에 통화한 번호로 '배 타다가 갇힌 거 같아요~~ 경찰보트 좀 불러주세요'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피해자 조씨의 목에는 전형적인 목졸림 자국이 있었다.

10분 후, 접견 시간이 끝나 마이크가 꺼졌다. 오씨는 계속해서 "경찰서에서 네 명이 온몸을 뚜드렸다"고 외쳤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보성·광주광역시=한경진 기자 kjhan@chosun.com         조선일보  2010.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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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마다 잠자는 습관 '제각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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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8명이 性관계로 연결 [조선일보 2005-01-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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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고교생 실태 표본조사 832명중 126명만 '1대1'

 

[조선일보 윤희영 기자]

 

미국 사회학자들이 고등학생들의 성관계 실태를 표본조사해 만든 지도가 24일 공개됐다.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평균 수준의 한 소도시 고교를 선정, 832명의 학생들에게 전교생 명단을 보여주며 익명으로 최근 6개월간의 성관계 상대를 밝히도록 했다.

조사 결과 절반 가량이 성행위를 했으며, 이 중 288명은 1대1의 성관계가 서로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연결고리 맨끝의 학생은 파트너가 단 1명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머지 286명과 간접적인 성관계를 가진 셈이다.

 

하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난잡한 관계를 갖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63쌍 126명의 학생은 오로지 1명의 이성친구하고만 관계를 맺었다.

남학생 1명과 여학생 2명 등 세 사람만의 관계는 12건, 여학생 1명과 남학생 2명은 9건, 여학생 1명과 남학생 3명은 2건, 그 반대는 1건이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성관계 고리가 서로 이어져 있으며, 가장 복잡한 남학생은 8명의 여학생 및 1명의 남학생과 관계를 맺었다.

성인들은 ‘성적 활동’이 활발한 집단이 존재해 이성들과 복잡한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학생들은 허브(hub·중심) 집단이 없고, 연결고리 상당수가 단선으로 분포돼 있다. 따라서 성인에 대한 성병 예방은 중심 집단을 목표로 하되, 10대 학생들은 연결망에 포함된 모든 당사자들에게 실시해야 한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윤희영기자 [ hy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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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총 맞는 건 괜찮지만 참수는 무서워… 악몽 피하려는 본능으로 꿈도 안꿔요"

 

입력 : 2009.06.20 03:05 / 수정 : 2009.06.21 06:07

전쟁 있는 곳에 그가 있다 강경란 분쟁지역 전문PD

강경란(姜暻蘭·49)은 2006년 9월 이화여대에 있었다. 1986년 중단했던 사회학 박사과정을 23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 1인 미디어 '프론트라인뉴스서비스'(FNS) 대표로 13년을 전쟁터에서 보낸 그는 너무 지쳐있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대신 그는 모교(母校)를 택했다.

그는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를 호텔 대신 의정부 언니 집 방 한 칸에서 살았다. 지프로 누비던 전장(戰場) 대신 매일 지하철로 학교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갔다. 그곳에는 팽팽한 긴장 대신 23년 전의 향수(鄕愁)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바꿔놓은 캠퍼스에서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어느 날
KBS에서 '20억 프로젝트'를 공모(公募)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모든 이에게 지원 자격이 주어졌으며 주제도 '자유(自由)'였다. '학생' 강경란의 혈관 속에 잠자던 야성이 끓기 시작했다. 그가 낸 '인간의 땅'이 당선작 3편 중 하나가 됐다. 그 첫 편이 KBS를 통해 21일 방영된다.

"분쟁지역을 오가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쉬면서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더 나이 들기 전에 공부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겹쳐 학업을 재개한 것인데 1년 만에 그만두게 됐죠." 교수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떠나는 그에게 "빨리 다녀오라"고 했다.

기획물을 끝내는 데 3년이 걸렸다. 아프간·버마·네팔·아르메니아 쿠르드족과 '선박의 무덤'이라 불리는 방글라데시의 치타공까지 그와 동료들은 사선(死線)을 넘으며 이 시대 아시아인들의 삶을 날것 그대로 담아왔다. 중동에서 살아온 그를 한국인 여성이 중동에서 살해된 15일 만났다.
―전쟁터를 떠나니 심심하지 않나요.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간섭받는다는 건 편한 일이죠. 다만 23년 만에 다시 돌아간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제가 오르던 계단이 엘리베이터가 돼있고 여유로운 공간도 사라졌더군요."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까.

"거의 없었어요. 저는 목숨을 걸고 취재했지만 사람들은 다큐멘터리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요."

―다른 PD들처럼 얼굴을 카메라에 내밀 걸 하는 후회는 없었나요.

"방송기자는 단기간에 스타가 될 수 있지만 PD는 여럿과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합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들은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라는 증거를 남기고 싶겠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PD들은 카메라 뒤에 있습니다."

―돈은 벌어놓고 학교에 다닌 겁니까?

"현장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재테크 같은 것은 신경도 못 썼죠. '내가 버는 1000만원은 다른 사람의 1000만원과 가치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마음이 불안했던 건 사실이었어요. 그나저나 1000만원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는데…."

―물정을 영 모르시네, 1000만원으로 집 살 수 있는 시대는 안 올 걸요.

"그렇겠죠?"

―1남4녀의 막내라고 들었습니다. 큰 오빠는 이미 은퇴를 했다는데 혼자 결혼도 안 하고 전쟁터를 누비는 게 가족들에게 미안하지 않던가요.

"언니 셋이 제 후원자예요. 그들도 살면서 한계를 느끼니까 제게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라'며 도움을 많이 줬어요. 이번 '인간의 땅' 제작 때도 언니들 돈을 꽤 가져다 썼어요."

―전쟁터가 그리 좋습니까, 남자보다?

"남자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일하다 개인감정이 흐르면 지장이 되니까 선을 긋기도 했고요. 저 이병헌 좋아해요. 이번 프로그램 내레이션도 이병헌과 감우성이 맡았어요."

―아직도 눈이 높군요.

"……."
(좌)강경란이 팔레스타인 하마스 대원들을 촬영하고 있다. 이 취재를 할 당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무력충돌해 분위기가 험악했다./(우) 미얀마의 민주화 영웅 아웅산 수치 여사와 강 PD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아웅산 수치를 만나기 위해 미얀마의 유력 야당정 치인과 접촉했다. 그 정치인의 아내가 아웅산 수치의 개인 비서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래) 네팔의 마오 반군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강경란.
―다큐멘터리 일을 시작한 게 1987년이죠.

"대학 졸업 즈음 '한국전쟁 다큐멘터리'팀에서 일을 배웠어요. 정식 직원은 아니었지만 일을 꽤 한다고 평가받았는지 그 후 '몽골리안 루트' 같은 다큐멘터리에도 참여했습니다. 제일기획에 입사해 Q채널 PD가 됐습니다. 처음 제가 만든 프로그램이 '아웅산 수치의 버마'였어요."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1988년 버마(미얀마) 민주화를 군부(軍部)가 쿠데타로 막았어요. 당시 대학생들이 정글로 들어갔습니다. 소수민족과 힘을 합쳐 싸우면 군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들은 가족과 헤어지면서 '길어야 3개월이면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20년이 지나도록 정글에 있는 거죠. 제가 다시 이 일을 하게 된 건 2006년 가을에 버마에서 온 이메일의 영향이 컸어요."

―무슨 메일이었나요.

"예전에 취재했던 버마 학생이 사진이 첨부된 메일을 보냈어요.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이 됐더군요. 정글에서 결혼해 얻은 아이도 옆에 있었어요.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뭘까, 희망이 없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흘러간 시간에 대한, 그들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정글 취재가 힘든가요.

"제가 길도 잘 못 찾고 방향도 잘 못 찾아요. 걷는 것도 남들보다 힘들어해요. 뱀이나 독충보다 더 무서운 게 걸어야 하는 겁니다. 정글에서는 보통 한 달 정도를 걷는 데 너무 힘들어 코끼리를 탔어요. 그런데 숙련된 코끼리는 전부 일하러 가고 '수습 코끼리'를 탄 거예요. 걷는 게 아니라 저를 태우고 춤을 추는 수준이었어요. 한 시간쯤 흔들리니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그 프로그램이 프리랜서로 독립한 계기가 됐죠.

"제가 아웅산 수치 인터뷰를 했어요.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정치인 우티누 NLD(민족주의민족동맹)의장과 접촉했어요. 그의 아내가 아웅산 수치의 개인 비서역할을 했거든요. 이런 인터뷰는 끝없이 기다려야 해요. 계속 편지 보내고 사람을 보내지만 기약 없는. 신문이나 방송사에서 월급 받는 기자나 PD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프리랜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렇게 하면 보답이 오나요.

"아무리 시간과 경비를 쏟아 부어도 보답을 잘 못 받는 게 프리랜서의 비애(悲哀)지요. 우리 방송 풍조에 이런 게 있어요. 특종을 해와도 '글쎄 특종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식이에요. 외신 베끼면 쉬운데 왜 엄청난 돈을 들여 당신 프로그램을 사야 하느냐는 인식도 있어요."

그는 본격적으로 전장을 쫓아다녔다. 유고, 마케도니아를 거쳐 알바니아가 무너질 즈음 그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이 정권을 쟁취한 직후였다. 지금까지 그는 10번 넘게 아프간에 갔으며 한번에 보통 5~6개월씩 머물렀다.

아프간에서 그는 세계적인 방송사도 접근하지 못한 탈레반 수뇌부와 친분을 유지하면서 귀중한 영상을 기록했다. '분쟁지역 전문 PD'라는 이름도 그래서 얻었다. 그는 "나중에 은퇴하면 아프간에서 게스트하우스나 운영하며 살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끈덕진 성격입니까.

"원래 조급하고 차갑고, 친구들은 저보고 '찬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할 정도예요. 전쟁터에 다니면서 사람이 된 케이스 중 하나죠."

―아프간이 왜 좋습니까.

"탈레반은 굉장히 특이해요. 현대인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들 나름의 원칙에 철저합니다. 원칙만 지키면 관대해요. 지금의 탈레반은 예전의 탈레반과 영 딴판이에요. 도둑들도 탈레반이라고 하고 다녀요."

―탈레반 외무장관과 인터뷰를 성사시켜 단숨에 유명해졌죠.

"제가 코디를 했던 사람이 카말이라는 파키스탄 인이었습니다. 그가 당시 아프간 CNN 임시직 특파원으로 있었는데 그의 동생이 옛 소련과 항쟁하던 무자헤딘 출신으로 물라 오마르의 비서였어요. 그렇게 연결돼 인터뷰가 이뤄졌고 탈레반에서 특별 전세기를 내줘 아프간 전역을 돌아다녔어요."

―사람을 사귀려면 돈이 들지 않나요.

"전혀 안 줄 수는 없지만 턱없이 낼 능력이 프리랜서에게는 없습니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현지인들은 오랜 기간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유명 방송사 같은 고객이 오지 않는 계절이면 그리 큰돈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아프간에서 다시 탈레반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뉴스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탈레반이 어떻게 다른가요.

"과거에는 무슨 사건이 터지면 탈레반 지도부에 항의를 하면 금세 해결됐어요. 규율이 잡혀 있는 거죠. 탈레반은 한번 친분을 트면 그렇게 편하고 안전할 수가 없어요. 지금은 누구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아프간이 지금처럼 위험한 때가 없을 거예요. 물론 공통점은 있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두 반미(反美)라는 겁니다."

―분쟁지역을 다니면 겁나지 않나요.

"2007년 1월2일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 기자들이 탈레반에게 붙잡혔지요. 그들의 코디 2명이 제 코디였어요. 그들이 떠나기 전날 만났는데 며칠 뒤 카불에서 연락하니 휴대전화를 안 받아요. 칸다하르 옆에 헬만드주(州)가 육로로밖에 접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탈리아 기자들은 돈을 주고 풀려났는데 코디 한 명은 참수(斬首)를 당했어요. 다른 한 명은 석 달을 독방에 갇혀 있었어요. 베트남전쟁 때 미군 포로를 잡아넣는 새장과 비슷한 곳이었답니다. 풀려나 정신이상이 됐어요."

―외국인들은 특히 표적이 되죠.

"인질이 사업이 됐어요. 외국인뿐만 아니라 같은 아프간 사람이라도 돈이 좀 있어 보이면 마구 잡아가요. 이번에 완성한 아프간 프로그램의 제목이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살아남은 자들'이라는 거예요. 처음 제가 취재했던 30명 중에 남은 사람이 한 명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죽었거나 행방불명이 됐어요."

―매사에 조심하면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지겠군요.

"아프간은 무조건 양고기 아니면 닭고기를 난(빵)에 싸먹는 거잖아요. 한마디로 '양닭양닭'입니다. 칸다하르에 가면 보통 콘티넨털 호텔을 이용하는데 요새(要塞)처럼 생겼어요. 호텔 객실에서도 잠을 잘 못 잡니다. 누가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밖의 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샤워도 잘 못해요.

―죽는 게 무섭지 않습니까.

"총을 맞는 건 괜찮아요. 금세 죽을 수 있잖아요. 참수는 무서워요. 죽을 때까지 한참을 고통받아야 하잖아요."

―무서운 꿈도 꿉니까?

"인간에게는 방어기제라는 게 있다고 하지요. 저는 꿈을 안 꿔요. 제 정신 속의 무언가가 무서운 느낌이 들어오는 걸 막고 있는 것 같아요. 눈빛과 디테일까지는 생각이 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기억하지 않아요."

―탈레반을 한번 취재하면서 1시간짜리 테이프를 50~60개씩 들고나왔지요. 서양 언론이 혀를 내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탈레반은 웬만하면 사람에게 카메라 자체를 못 대게 합니다. 지금 같았으면 제가 촬영한 영상을 팔기도 하고 해외 판로(販路)도 모색했을 거예요. 그때는 '같은 현장에 있지만 너희들보다 낫다' 뭐, 이런 생각밖에 못했어요. '이 테이프 좀 팔아줘' 라고 말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어요. 취재만 했지 이것 가지고 장사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던 겁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죠."

―미국에서 찾는 물라 오마르를 본 적이 있나요. 어떻게 생겼습니까.

"칸다하르 그의 집 앞에서 만난 적은 있지요. 눈인사를 건넸더니 눈인사로 답하더군요. 아프간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어요. 그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잖아요. 외무장관 인터뷰할 때 처음 히잡을 썼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 풍습과 너무 달라 힘들다. 벗어도 되느냐'고 하자 그는 '괜찮다. 너는 외국인이고 이곳은 실내이니 벗어도 좋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인터뷰할 때 손을 내밀면 눈도 안 마주치고 제 통역에게만 이야기하는 탈레반이 대부분입니다."

―물라 오마르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파키스탄 퀘타 쪽에 있대요."

―오사마 빈 라덴은요?

"그걸 알면 현상금 탔지요. 제가 취재한 사람들도 같은 소리를 해요."

강경란 같은 이들은 전쟁이 일어나는 곳만 전전하는 팔자다. 아프간이 소강상태에 빠진 뒤 그는 이라크로 들어갔다.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몇 달을 버티다 폭격 개시 전 인근 요르단으로 빠져 나온 그는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잠시 국경이 열린 틈을 타 다시 이라크로 향했다.

―전쟁 때 왜 빠져나왔나요.

"제 얼굴이 너무 알려졌어요. 얼굴이 덜 알려진 몇몇 기자들은 이라크 정부의 눈을 피해 남았어요.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영국 BBC를 맨 앞에 앞세우고 몇몇 나라 기자들과 함께 들어갔지요. 문제는 두 번째 차가 라마디에 있는 주유소에 들어가면서부터 생겼어요. 예비 휘발유가 충분했는데 그 차가 왜 주유소로 들어갔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남자들이 화장실을 가고 나서 제가 맨 나중에 갔어요. 여자는 저 혼자뿐이었어요.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총소리도 들렸어요. 뛰쳐나와보니 일행이 다 도망가고 없었어요. 이라크 가이드와 저만 남았어요. 주유소에 들르지 않은 BBC차량만 빼고요."

―그래서요.

"총을 든 후세인 잔당이 BBC차량을 위협하고 있었어요. 거리가 꽤 됐는데 참 황당했어요. 그쪽으로 갈 것인가, 화장실에 계속 있을 것인가. 그런데 화장실에 있어봤자 소용이 없잖아요. BBC 차량으로 갔더니 무장세력들이 '재판을 하겠다'며 그들을 마을로 끌고 가려는 겁니다. 멍하게 서있었는데 BBC카메라 기자가 저를 홱 낚아채 무릎에 앉히더군요."

―그가 생명의 은인이었군요.

"나중에 풀려나 그에게 고맙다고 했어요. 그는 '네가 덩치가 작아 내 무릎에 앉힐 수 있었다'며 농담을 했어요. 피트라고 아주 노련한 기자였어요."

―소변보러 갔다가 졸지에 재판에 회부된 기분이 어땠습니까.

"BBC방송 통역이 재치가 있었어요. 무장세력에게 '우리는 바그다드가 함락되면서 이라크가 모두 미군 손에 들어갔다고 알고 있다. 너희들이 건재하다는 것을 세계는 모르고 있다. 우리에게 취재 기회를 달라'고요."

―그랬더니요.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줬어요. 미군이 후세인 아들 잡는다고 쏜 미사일 때문에 무너진 부족장 집에도 데려다 줬습니다. 나중에 바그다드 입구 미군 초소까지 데려다 줬어요."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나요.

"이번에는 미군이 총을 겨누는 거예요. 거기서도 30분가량 잡혀 있었어요. 바그다드는 후세인 동상이 무너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다음 날 저희를 놔두고 도망친 일행을 만나 카메라를 찾았어요."

―최근 우리 언론계에도 분쟁지역 전문 기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여자가 유리합니까, 남자가 유리합니까.

"전쟁터에서는 당연히 여자가 유리하죠. 남자는 다 참수당하니까요. 전쟁은 남자들이 일으키는 거잖아요. 그래서 여자에게 더 맞는지도 몰라요. 경계심을 덜 갖고 남자보다는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해주죠."

―어렸을 때부터 전쟁을 좋아했습니까?

"전쟁과는 아무 관련도 없었어요. 대학교 때 방송 일을 하다 처음 접한 겁니다."

―'인간의 땅'에 아프간, 버마, 네팔, 방글라데시, 쿠르드족이 등장한다고 들었습니다. 몇 명이 투입됐고 예산은 얼마나 들었나요.

"저를 포함해 PD가 3명, 작가가 2명, 카메라맨이 7명 일했습니다. 방송사에서 예산은 8억원을 받았지요."

―얼마나 남았나요.

"……. (옆에 있던 박봉남 PD는 '강 선배 인건비 안 주면 100만원쯤 남는다'고 했다. 그 역시 아내에게 모자란 취재비를 지원 받았다고 했다. '한번만 더 찍으면 완성도가 높아지는 데 제 돈으로라도 갈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강 선배도 형부들 보너스가 전부 제작비로 쓰인다'고 했다.)

―도대체 통장에 얼마가 있는 겁니까?

"마이너스예요."

―그런데도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보단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일했던 사람들과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제게는 그들이 재산입니다.

―'인간의 땅'이라는 제목은 누가 붙인 겁니까.

"프랑스의 자원봉사단체 이름이 '인간의 땅'입니다. 전쟁터에서 아이들을 도와주는 단체지요."

강경란이 최근 완성한‘인간의 땅’프로그램이 담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그간 다녀온 곳들에 비하면 한국은 어떤가요.

"우리나라는 너무 답답해요. 세상 돌아가는 게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요. 조선일보가 이럴 때 잘해줘야 해요."

―왜 세계의 전쟁터는 다니면서 북한 취재는 안 합니까.

"2007년쯤 여성단체의 일원으로 2주 정도 북한에 다녀왔어요. 가보니 정말 취재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녀본 어느 나라보다요. 같은 동포니까, 말이 통하니 외국보다 쉬울 거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어요."

그에게 '전쟁터에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을 수도 있다"며 "다치고 부상당하느니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으면 복(福)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죽는 걸 하도 많이 보다 보니 객관화가 됐다"는 말도 했다.
목숨을 담보하고 분쟁지역을 찾아나서며 아시안인들의 잘망과 희망을 담은 "인간의 땅"을 3년만에 완성한 강경란PD는 이제 이땅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고 한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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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시, 물질만 있고 문화가 없다” - 재불 건축학자 떼오도르 폴 김 인터뷰 일제·한국전쟁·개발 탓 옛길·성곽 등아름다운 역사장소 사라져 4대강 사업 당장 중단해야

경향신문 | 김종목기자 |

 재불 건축학자 떼오도르 폴 김(51)은 최근 펴낸 < 사고와 진리에서 태어나는 도시 > (시대의 창)에서 한국의 도시(건설) 현주소를 '인간 사육장'이라고 규정하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문화'와 '역사' 없이 단순히 '생활'을 영위하는 '집단 거주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한국 건설·개발을 본격 비판하게 된 배경에 대해 김씨는 "기업과 공무원이 무지한 정책으로 기형과 마비의 도시, 고통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악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며 "위험 수위에 이른 조국의 문제를 더이상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4대강 사업과 세종시 건설에 대해서도 인문학적이고 공공적인 관점에서 비판적 의견을 내놓았다. 김씨는 프랑스 국립건축그랑제콜에서 건축·인문사회학·조형예술·도시계획을 이수·졸업한 건축학자이자 사회학자. 1990년대 이후 한국을 오가며 강원도 탄광 관광 개발, 자연 생태학 보존에 의한 관광계획 등 연구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11월 말 방한을 앞둔 김씨와 전화와 e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재불 건축학자 떼오도르 폴 김은 한국의 건설·개발(현장)을 기업과 권력의 영토, 부동산 재테크의 장으로 규정하며 "인간의 행복을 최대의 목적, 최후의 결과로 추구하는 인문학만이 문화의 역사를 형성하는 도시의 본질적 개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는 지식·예술·도덕·법·풍습 등 인간이 사회 공동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능력의 총체를 의미한다. 도시는 인간 문화의 총체적 장소이자 사회적·공공적 장소다. 기술 공학, 자유시장경제이론, 권력주의로 추진해선 안 된다. 인간의 행복을 최대의 목적, 최후의 결과로 추구하는 학문만이 문화와 역사를 형성하는 도시의 본질적 개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도시의 예술성도 강조하는데, 무엇인가.

"도시의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가에 달려 있다. 도시의 예술성은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욕망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발전하고 좋아지는 삶의 변화로 추구되어야 한다. 가족의 삶이 동네·지역의 삶을 포용하여 친밀한 이웃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의 사회적 삶을 이룰 때 예술성은 존재한다."

-한국의 도시는 왜 인문학적 요소를 상실했나.

"36년간 일제 군국주의의 압제로 문화와 역사가 말살됐다. 또 6·25 전쟁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다. 옛 수도인 한양의 문맥, 고유 문화, 역사를 되살리기보다는 가난함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방법만이 살길이라 여겼다. 물질적 변화를 절실하게 바라다보니 당나귀와 소가 다니던 옛길, 초가집, 돌담, 성곽 등 역사 장소들은 '옛 것, 늙은 것, 가난한 것'이라는 판단 아래 사라졌다. 한국은 아름답다. 하지만 훌륭한 자연 환경을 파괴해 콘도·골프장·모텔로 뒤덮어 참혹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부동산 재테크의 장소로 변질됐다. 도시는 공공 자산이 아니라 기업과 재력가들의 영토가 되어버렸다. 시민들은 이들이 만든 영토에서 이들이 원하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평생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며 살고 있다."

-건설·개발 공약이 선거마다 주된 공약으로 제시된다. 유럽은 어떤가.

"인문사회학자들로 구성된 지역개발위원회와 지역의회, 지자체, 주민협의회가 건설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결정한다. 건설경기 촉진과 시장경제 활성화를 구실로 하는 건설 추진이나 정치공약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한국도 인문사회학자들이 건설 승인·심의에 참여·결정하면 더이상 일확천금을 노린 허상의 건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종시 건설을 두고 논란이 있다.

"세종시 건설은 중단되어야 한다. 세종시를 건설할 돈으로 공주시와 대전시 사이에 있는 수백개의 가난한 읍·면과 소도시를 재구획해 대도시와 같은 수준의 교육·문화·복지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현명한 정책이다. 도시 건설은 정치적 공약이나 정권의 약속 차원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4대강 사업은 어떤가.

"목표·구상에는 충분한 목적론이 있다. 하지만 방법론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지금처럼 민간 건설회사와 용역기술회사가 기술과 공법의 가능성만을 타진해 내놓은 기본계획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라면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산악국가인 한국은 유럽과 달리 심하게 곡류되어 있고, 범람원, 삼각주 등 주변 환경이 다양하다. 환경·생태학·지질학·수리학·산림학자들이 분석·검토하지 않으면 자연 생태계 파괴라는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인문학적·한국적 도시의 구체적 대안은 무엇인가.

"서울과 부산이 차이가 있나. 어디가 강원도, 충청도의 도시인가. 건물 높이, 인구 수 차이밖에 없다. 건축 재료, 조형성, 색상 등이 전부 달라야 한다. 각 동네만의 지역적 특색과 주제를 찾아 개발하고, 도시적 맥락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일관된 계획을 짜야 한다. 이렇게 개발하면 국가 전체가 평등하게 개발되어 임금·교육·빈부의 격차가 줄어든다. 도시와 건물을 건설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를 증명하는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는 행위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견제기구와 위원회 등을 만들고, 옳고 그름을 따져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좌파, 우파 편가르지 말고, 진정으로 누가 올바른 정치인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다. 인문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훌륭한 정신을 가진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등을 뽑아야 한다고 본다." < 김종목기자 jom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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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기사 읽고 찝찝하다. 먼저, 이 사람은 4대강뿐만 아니라 세종시에 대해서 더 비판적이다. 그런데 제목에는 4대강 반대만 뽑는 장난을 치고 있다. 한국의 언론은- 진보건 보수건- 기사에서는 팩트만으로 이야기하겠다는 겸손함을 가졌으면 한다.

다음으로 책에서는 뭔 말 했는지 모르겠으나, 이 인터뷰는 빈약하다. 한국의 도시가 "인간사육장"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웃기는 소리다. 우리나라 도시 멋없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역시 겸허함이 없는 소리다. 개발업자와 관료들의 무지가 우리 삶의 환경을 망치고 있지만,  한국 도시의 곳곳에는 그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역동성과 아름다움이 구현되고 있다. 한국의 도시에 대해서, 우리 내적 관점에서도 바라보는 섬세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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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생명체에 관심 갖는 로마교황청 연합뉴스 | 입력 2009.11.11 10:40 | 수정 2009.11.11 11:22 (바티칸시티 AP=연합뉴스) 로마 교황청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교황청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학술회의를 열고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과 그 신학적 의미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교황청 천문대장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 신부는 5일 간 계속된 이 회의 결과를 10일 결산하는 자리에서 "생명의 기원과 지구 밖 어딘가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매우 적절하고 진지하게 검토해 볼 만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는 천문학과 물리학, 생물학 및 여타 분야 전문가 30명이 모여 새로운 학문으로 대두하고 있는 우주생물학의 핵심 분야인 생명의 기원과 외계 생명체의 존재 문제를 토론했다. 예수회 신부로 천문학자이기도 한 푸네스 신부는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철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회의에서는 과학적 시각에만 초점을 맞췄으며 각기 다른 학문이 이 분야 연구에 어떻게 협동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지가 주로 논의됐다고 밝혔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천문학교수 크리스 임피는 교황청이 이런 학술회의를 주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생물학 분야 연구자들과 생물학적 우주에서의 존재의 의미를 묻는 사람들 사이에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회의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지구 외의) 다른 세상에 감각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하는 지"에 연구의 초점을 모을 것을 촉구했다. 과학자들은 이미 태양계 바깥에서 수백개 행성을 발견했으며 임피 교수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가 몇년 안에 확인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체가 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거나 혹은 지구 외의 어떤 곳에 인간과는 다른 생물.화학적 구성을 가진 생명체가 있다거나 또는 지능이 있는 생명체와 접촉하게 된다면 인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네스신부는 외계에서 지능있는 존재가 발견된다면 이도 역시 "창조의 한 부분"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말했다. maroon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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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대무변한 우주 안에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한 없는 것이 아니라, 없다는 것이 입중되지 않는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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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국정원장과 맞장토론 할 뜻있다” “내년 지방선거서 다양한 고민 풀어낼 것” 정치활동 시사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국정원장과 ‘맞짱 토론’이라도 할 용의가 있다”며, 자신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이사는 5일 국회에서 열린 한 조찬 특강에 강사로 나서 “국가한테 소송을 당하며 교과서로 배운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국정원이 국가안보를 다루는 고유한 역할을 벗어나 국민의 일상 활동을 사찰한다면 국가적 문제”라며 “만약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국정원장과 일대일 맞짱 토론을 벌이라면 충분히 그럴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진보신당이 밝혔다. 이번 강연은 진보·개혁 성향의 야당 의원 모임인 ‘진보개혁 입법연대’가 ‘한국 사회의 길찾기’를 주제로 연 것이다. 이어 박 이사는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시민활동가로서 지금껏 지켜온 원칙과 정치 참여 사이에서 새삼 고민하게 됐고, (내년) 지방선거에서부터 다양한 고민을 풀어내겠다”고 말해, 정치활동에 나설 가능성도 언뜻 내비쳤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달 14일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을 통해 시민단체를 옥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박 상임이사에게 국가를 원고로 삼아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박 이사는 이날 강연에서 이명박 정부를 ‘거대한 퇴행의 시대’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이면 현 정부가 ‘일패도지’(한순간에 무너진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실용정부라고 하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실용적이지 않아 문제”라며 △실용과 거리가 먼 인사 시스템 △진정성 없는 서민 행보 △부정부패에 대한 경각심 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또 그는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단순한 저항을 넘어 창조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지적한 뒤 △학습할 것 △완전히 새로운 발상으로 실천할 것 △정치영역에서도 치밀함이 필요함을 인식할 것 △헌신과 희생의 리더십을 보여줄 것 △현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 △끊임없이 자신과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창조할 것 등을 주문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200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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